‘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코로나 시대의 경제위기를 바라보며>
윤기향(법대 65)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김춘수가1969년에 발표한 시다. 김춘수는 그 시에서봄의 생명력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산문적 의미를 담기보다는 봄의 생명력을 이미지로 전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무의미의 시’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 김춘수는 표현주의 화가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나의 마을>(Moi et le Village)이라는 그림에서 그 시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23살 때 파리로 유학을 갔던 초현실주의화가다. <나의 마을>이라는 그림에는 멀리 마을의 전경이 보이지만,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 등으로 채색된 커다란 말의 머리와 사람의 얼굴, 그리고 큰 생명나무가 화폭을 압도하고 있다. 동화 같은 마을 풍경이지만 초현실적이다. 김춘수는 샤갈의 초현실적 회화로부터 이미지를 강조한 무의미의 시를 실험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시는 이미지만을 담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춘삼월에 내리는 눈은 보는 이에 따라 꽃샘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는 상서로운 눈으로 환영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삼월에 눈이 오면 쥐 똥 만한 겨울 열매들이 탐스럽게 열매를 맺어 올리브 빛으로 채색이 될 것이고 아낙네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피워 차가워진 밤의 공기를 훈훈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토지가 비옥 해져 그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3월의 한설이 반드시 추위와 움츠림 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충격도 때로는 생태계에 선순환을 가져다줄 수 있다. 태풍이 세차게 불어 바닷물을 밑에서부터 크게 휘저어주면 바다의 생태계가 더욱 건강해진다는 연구도 있다. 이러한 이치는 자연의 생태계뿐만 아니라 경제의 생태계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할 수 있다. 경제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단기적으로는 태풍이 할퀴고 간 자국처럼 경제에 생채기를 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체질을 더 강하게 만들어 경제를 더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도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에 미국식 시장경제 자본주의체제가 종말을 고할 것이 라는 우려 섞인 견해도 있었고 공산주의 혁명이 미국에서 일어날 것으로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미국경제는 대공황 이후 더욱 체질이 강해져 그 이후 세계경제를 제패해 왔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로 전 세계가 벌벌 떨고 있다. 온 천지에 눈이 내리고 있다. 그것도 3월이 아니라 7월에 북풍한설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으며 경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을 지나고 있다. 물론 경제위기는 지난 150여 년 동안만 보더라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일어났다. 그래서 때로는 이러한 현상을 경기 순환이라고도 한다. 지금껏 우리가 경험한 경제위기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물론 1930년대에 일어난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다. 그리고 1970년대의 석유파동에 따른 경기침체,1997년의 아시아외환위기, 2007년의 서브프라임 문제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 (이를 대 침체(Great Recession)라고도 부른다)등도 우리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제위기는 이전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을 형성하고 있고 세계화되어 있는데 온 세계가 멈춰선 것이다. 어느 나라도 이 위기로부터 비켜갈 수 없게 되어있는 구조이다. 심지어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 한반도는 거의 무풍지대였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글로벌 공급체인이 붕괴된 데다가 수요측면의 충격파도 만만치가 않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공급측면과 수요측면의 충격이 동시에 몰아친 경우는 별로 없었다. 대공황, 대침체, 그리고 아시아외환위기는 주로 수요측면에 충격이 가해져 발생한 경기불황이었으며 1970년대의 석유파동에 따른 위기는 공급측면에서 애로가 발생해서 일어난 경기불황이었다. 사람들은 현재의 경제위기가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로 번질까 걱정하고 있다. 대공황은 1929년 10월 어느 날 갑자기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시작되었다.
1930년대 대공황 때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우선 미국의 실업률은 1933년에는24.9%까지 치솟아 올랐다. 대공황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인 1929년에는 실업률이 4.0%였다. 그 당시 고통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근로자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실업자가 된 셈이다. 그 당시에는 보통 가장 한 명이 직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네 가정 당 한가정은 수입이 없는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대공황이 발발하기 전에 23,000개에 달했던 미국의 은행들은 1934년까지 9,000여 은행이 파산해 14,400개로 줄어들었다. 이 기간동안 산업생산은 거의 반으로 줄어들었으며 물가는 30%이상이 하락해 미국 경제는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우리는 대공황 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깡통을 옆에 차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긴 행렬을 사진을 통해 자주 보아왔다.1933년에 대통령에 취임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라고 선언하면서 대규모 경기부양조치(뉴딜 정책)를 취하기 시작했다. 루스벨트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경기회복의 견인차가 되었지만 그러나 대공황을 종식시키지는 못했다. 미국경제는 1933년을 저점으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으나 1937년에 다시 리세션이 불어 닥쳤다. 마침내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1940년 말부터 미국은 대공황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공황은 미국인의 삶 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10년 이상 속되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대공황에 버금갈 것인가? 현재의 경제위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며 그 골이 얼마나 깊어질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경제는 2009년 글로벌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난 후 그동안 꾸준히 확장세를 지속해 왔다. 실업률도 2020년 1월 3.6%, 2월 3.5%, 3월 4.4%를 기록하는 등1960년대에 경험했던 완전고용수준의 상태에 도달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은 금년 4월에 실업률은 14.7%까지 상승했으며 그 이후 6월에는 11.1%로 다소 낮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10월 미국의 실업률 10.0%와 비교해 보아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V자형 경기반등 또는 U자형, L자형, W자형 경기회복을 예측하기도 하고 나이키로고형 경기반등을 점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예측들은 다 부질없는 노력일 뿐이다. 지난 6월 말 IMF는 2020년 세계경제 성장률에 대한 전망치를 수정, 발표하였다. 그에 의하면, 2020년 세계경제의 성장률은 –4.9%,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8.0%, 그리고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1%가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치는 앞으로 2 ~ 3개월후에 다시 수정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지금 현재로서는 금년에 많은 나라들이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예측 말고는 숫자 그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코로나바이러스의 제2차 파동이 예상되고 있으며 이미 미국을 포함한 일부나라에서는 2차 파동이 시작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백신과 치료약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의 길이와 깊이를 예측하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그것은 점치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공자에게 한 제자가 “점이 얼마나 잘 맞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공자는 “7할은 맞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점이 열 번 가운데 일곱 번은 맞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점이 맞을 가능성은 열 번 가운데 다섯 번 정도라는 것이 확률이론의 결론이다. 물론 숫자를 맞힐 확률은 이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도 “하나님은 인간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톨스토이는 구약성경 (잠언)에 나오는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했다”는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더라도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경제는 위기 이후 더욱 강하고 효율적인 모습으로 복원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학과 풍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챨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은 “인생은 가까이서 찍으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찍으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는 단기적으로는 춘삼월에도 눈이 내리는 한파를 겪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열매들이 올리브 빛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놀라운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
<Florida Atlantic University 경제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