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향기로 빙빙 돌다가 – 곽상희 (문리 52)

애초에 비는 허공에서는
하나의 몸이다가
땅으로 가까이 오자
천만개의 윤선(潤線)으로 흩어지고
몸 반듯 세워 흙의 몸 낱낱이 눈치 보며 살피다가
이윽고 흙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가네
엄마의 젖꼭지를 빠는 아기처럼

팔뚝의 근육이 되고 힘줄이 되어
오오, 4월에는 흙의 고운 눈망울 되어
비는 향기로 빙빙 돌다가
다시 하늘로 가네

때로는 한번 더 한번 더 하며 바람과
나뭇가지들과 바위와 겨울 강의 단단한
얼음에 힘을 얻어
고즈넉이 탄식하며 소곤거리다가

온몸을 소리 없이 뒹굴며 뒹굴며

이 세상 가장 못나고 낮은 곳을 찾아
더욱 깊이 몸을 아래로 도사리고
무릎 팍 올곧 젖어들어

함께 즐거운 쌍곡선의 곡조를 타며 하늘로
하늘로 꽃안개 되어 올라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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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미주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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