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과 원주민 우선주의

이회백 (의대 61)

 

북미 대륙의 원주민이든 인디안들은 1620년에 온 청교도를 시작으로 유럽 이민들이 가져온 총, 병균, 철에 의해 거의 멸종되다시피 되었고 18세기 말에는 WASP로 약칭되는 북서구 백인 개신교인들이 북미 대륙의 원주민이 되었다. 1830년에 감자 기근으로 애란인이 많이 들어오자 먼저온 개신교인들은 이들을 배척하게 되고 카톨릭 애란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시침을 떼고 나는 모른다고 해서 이들을 Know Nothing Party 라고 불렀다.

1849년 Gold Rush와 대륙횡단 철도 노동력의 필요로 값싼 중국인을 “수입”했는데 1869 년 대륙 횡단 철도가 완성되어 중국인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는데도 돌아가지 않차 중국인 배척 운동이 일어났다. 결과는 1882 년에 제정된 Chinese Exclusion Act로 중국인만을 겨냥한 이민 저지법을 만들었다. 1898년 하와이가 미국 영토로 편입되자 하와이에 있던 일본인들이 임금이 두배인 캘리포니아로 몰려오자 이번에는 일본인 배척 운동이 일어났다. 동시에 동쪽으로는 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노동력의 수요가 늘어나 이태리인, 폴랜드인, 헝가리인, 러시아 유대인 등 남부와 동부 유럽인들이 몰려들자 1894 년 이들의 이민을 막자는 Immigration Re- striction League가 생기고 1917년 Literacy Test Law가 통과되어 영어권이 아닌 이민을 막으려고 하였다. 1924년엔 Johnson-Reed Act 라 하여 국적별로 쿼타제를 실시하여 유럽인 외 다른 나라 이민은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극심한 이민억제법을 제정했다. 1930년 에 시작된 대경제공황 그리고 1939년에 시작된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1945년까지 이민은 극히 저조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의 이민 경향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째로 전쟁으로 인한 난민이 몰려왔다. 러시아 유대인들이 새로 탄생한 이스라엘에 가지 않고 미국으로 몰려온 것이 그 한 예다. 오늘날 미국에 사는 유대인 수가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 수와 거의 맞먹을 정도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는 2차대전 후 미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누리게 되어 이민을 받아드릴 수 있는 아량이 생겼다. 곡간에서 인심난 격이다. 셋째는 냉전에 이기기 위해 외국인에게 후한 정책을 쓰게 되었다. 우선 1943년에 일본과 전쟁에 동맹국인 중국을 더 이상 자극할 수 없어 Chinese Exclusion Act를 폐기했다. 냉전의 산물인 반카스트로 쿠바인, 월남전으 로 인한 소위 “Boat People”을 받아들인 것은 물론이다. 또한 흑인 차별을 금지한 Civil Rights Act와 함께 인종차별적인 이민 정책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65년에 통과된 Hart-Celler Act는 이를 반영한 획기적인 이민법이다. 즉 이때까지 미국이 견지했던 원주민 우선주의를 버리고 이민 환영주의로 대전환한 것이다. 이법은 종래의 국적별 쿼타제를 없애고 가족 이민을 허용하고 고급기술직 이민을 늘리는 이민법이다. 이 법을 논의할 당시 이법이 통과되면 미국은 외국인(유색인)에게 수문을 열어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는 묵살되었다. 결과는 유럽인 이민은 급격히 감소하고 아시안과 라틴아메리카인 이민은 급속히 증가했다. 이 법을 작성한 입법자들이 이러한 결과를 예측했더라면 이 법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1970년 후반부터 유럽과 일본이 부흥하자 미국의 경제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기 시작하고 뒤따라 중국의 경제력이 강해지자 원주민 우선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또 합법적인 이민뿐만 아니라 막대한 수의 멕시코 불법이민자의 “침입”으로 고심하던 미국은 이들을 사면시킴과 동시에 불법이민 고용자를 처벌함으로서 더 이상의 불법이민을 막으려고 만든 1986년의 이민법은 실패로 끝났다. 2017년 트럼프는 이러한 반이민 감정을 잘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유럽에서는 이미 반이민 정서가 널리 퍼지고 있었다. 유럽은 2차대전 전에는 이렇다할만한 이민 문제가 없었다. 2차대전 후 유럽 여러 나라가 소유하던 식민지들이 독립을 하자 식민 정권을 위해 일하던 식민지인들이 유럽으로 몰려오게 된 것이 유럽 이민 문제의 시작이다. 화란에는 화란을 돕던 인도네시아인 Moluccans, 불란서에는 Algeria 전쟁 당시 불란서군과 같이 싸운 알제리아인 Harkis, 지구상에서 해 지는 날이 없다고 자랑하던 영국에는 전세계에서 식민지인들이 몰려들었다. 파키스탄 이민 후손이 런던 시장에 당선된 것은 이 덕이다. 이미 1983년 에 이민을 막지 못하면 백인 유럽은 사라진다고 경종을 울린 사람이 있다. 불란서인 Jean Raspail 이다. 그는 “The Camp of the Saints”란 소설을 통해 무력을 써서라도 이 민을 막아야 하고 막지 못하면 백인 세상 은 종말이 오고 만다고 경고했다. 당시 그는 백인 우월주의자, 인종 차별 주의자라고 비 난을 받았으나 최근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모슬렘 피난민이 전 유럽으로 몰려들자 그는 예언자로 추앙되고 있다. 영국은 이민을 막는데 장애가 되는 유럽 연합을 탈퇴하기로 결정했고 다른 나라도 그 뒤를 따르려고 하고 있다. 유럽 연합이 무너지면 유럽이 어떻게 러시아와 중국을 대항할 수 있느냐고 독일 chancellor Angela Merkel이 유럽 연합을 살리려고 애쓰고 있으나 독일에서조차 그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 트럼프의 선거참모가 Steve Bannon 이였고 그에게 Jean Raspail은 영웅, The Camp of the Saints는 그의 Bible이다. 그는 유럽 연합 탈퇴 운동과 반이민정책 정당을 지원하느라고 유럽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호주는 월남전 후 몰려온 “boat people”을 환영했었다. 그러나 아프카니스탄, 이락 전쟁 피난민은 소위 “Pacific Solution” 이라고 불리는 정책으로 강력하게 막고 있다. 이 정책은 난민들을 Papua New Guinea 북쪽에 있는 작은 두섬 수용소에 가두고 입국을 저지하는 정책이다. 비인도적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호주인들은 이 정책을 지지하는 정당에게 표를 던지고 있다. 9-11 한달전인 2001년 8월에 Norway 화물선 TAMPA가 아프카니스탄 피난민을 구조해 호주에 상륙시키려는 선장에게 자기 해역에 들어오면 체포하겠다고 위협하자 국제 사회에 물의가 분분했다. 호주는 이들을 받 지 않고 Nauru 섬 수용소에 보냈는데 New Zealand가 이들 일부를 받아들였다. 최근 이에 불만을 품은 호주 극우주의자가 이들을 대량 총격한 사건이 있었다.

남아프리카는 백인 Apartheid 정권이 물러가고 다수 흑인 정권이 들어서자 가난과 전쟁을 피해 오는 다른 나라 아프리카 흑인 이민 문제로 곤난을 겪고 있다. 피땀 흘려 백인 소수 정권을 물리쳐서 이제는 조금 잘 살게 됐다고 기뻐했는데 정작 열매는 다른 나라에서 온 흑인들에게 다 빼았긴다고 흑인 원주민이 흑인 이민자를 배척하는 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민을 막지 못한 탓을 Nelson Mandela에게 돌리고 그를 원망하는 사람까지 있다. 원주민 흑인과 이민 온 흑인 간에 폭력 사태까지 벌어져도 경찰과 법원은 못 본 척 할 수 밖에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인 나라가 남아프리카다.

여러 나라의 복잡한 이민 문제를 살펴보았다. 현재 미국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반이민정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역적인 삶의 조건의 차이가 있는 한 살기 어려운 곳에서 살기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인간을 막기는 힘들 것이다. 고기압 에서 저기압으로 흐르는 공기를 막을 수 없듯이. 그리고 지구는 너무나 좁아졌고 통신과 교통은 나날이 발전하는 세상이라 특정 지역에 특정 종족이나 문화, 종교를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이민의 나라라고 자처하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님은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7 백40만을 넘고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도 2백만을 넘을뿐 아니라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결국 원주민 우선주의 또는 원주민 보호주의는 점점 약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대학교 미주동창회

서울대학교 미주동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