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자족감(自足感)을 키워보리

이태상 (문리 55)

매년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새해 결심을 하게 된다. 대개는 작심 3일로 끝나게 되지만 이 결의(決意)와 결지(決志) 중에는 올해는 무엇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하지 않겠다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나의 역발상(逆發想)으로 ‘시간 낭비 하지 말아야할 일 8가지(8 Things That Are Truly A Waste of Time)’를 소개해본다.

1. TV 보는 일 (Watching TV)

2. 심심하고 외롭다고 아무하고나 사귀지 말 일 (Being in a relationship with someone just because you feel bored and lonely)

3 모든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지 말 일 (Trying to solve everyone’s problems)

4 대화에서 매번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겠다고 하지 말 일 (Trying to win every conversation that you have with people)

5 네가 불행한데도 단지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겠다고 하지 말 일 (Doing something just because it makes your parents happy while you are unhappy)

6 네가 이미 바꿀 수 있었을 것에 대해 늘 불평만 하지 말 일 (Constantly complaining about something that you could have already changed)

7 진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가짜 문제를 만들지 말 일(Creating fake problems so that you don’t have to deal with your real problems)

8 너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 널 좋아하게 만들려고 하지 말 일 (Trying to make someone love you when they are not interested in you) – 작자 미상 (Unknown)

이상의 8 가지 지침(指針)을 하나로 줄이자면 ‘매사(每事)에 억지 쓰지 말고 자연의 순리(順理)를 따르라’는 것이 되리라. 여기에다 사족(蛇足)을 하나 달아보자면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남과 비교하지 말라’가 되지 않을까.

이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극심(極甚)한 마음 고생 끝에 터득 한 ‘진리 (眞理)’이다. 사사건건(事事件件) 남과 비교하다 보면 아무 쓸 데 없고 전적으로 백해무익 (百害無益)한 열등감(劣等感)과 우월감(優越感)의 노예가 되는 걸 나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일에 나보다 잘하는 잘난 사람도 나보다 못하는 못난 사람도 있게 마련인데 어떻게 다 같을 수 가 있으며 또 다 같아서도 아니 되지 않겠는 가라는 깨우침을 얻게 된 것이다. 독수리로 태어났으면 독수리 답게, 달팽이로 태어났으면 달팽이답게 살 일이지. 우주 자연만물이 다 대우주 (macro- cosmos)에서 생성(生成)된 소우주 (micro-cosmos)라 해도 우리가 다 ‘붕어빵’이 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어라.

역사적인 실존 인물 한 사람을 예로 들어본다.

19세기 미국의 역사가이며 저술가 문인 헨리 애담스(Henry Adams 1838-1918)는 미국의 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John Adams1735-1826)가 그의 증조부였고, 6대 대통령인 존 퀸시 아담스(John Quincy Adams 1767-1848)는 그의 조부였다. 이렇게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보스톤에있는 명문 사설 라틴어학교를 거쳐 하바드에서 공부를 했으나 그는 평생토록 공식적인 학교 교육에 비판적이었다.

그의 유명한 자서전 헨리 아담스가 받은 교육(The Education of Henry Adams,1907)에 그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자서전이라기 보다 하나의 교육, 아니 헨리 아담스란 인물이 단지 교육이란 옷을 입힌 마네킨으로 여러 가지 다른 의상을 걸치는 교육이 유용한가에 대한 전기(傳記) 이다. (This is not so much an autobiography as it is the biography of an education. Rather, the figure called Henry Adams is merely a manikin on which the clothing of education is to be draped, outfit after outfit, to demonstrate whether the attire fits or not; that is, whether the education turns out to be useful.)”

그는 이렇게 공식적인 학교 교육의 무용론을 설파했다. 그의 자서전 서문(序文)을 아래와 같이 옮겨 본다.

<서문>

스위스 제네바의 철학자이자 작곡가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그의 유명한 고백록(Confessions, 프랑스어로는 Les Confessions)을 신적(神的) 존재에게 바치는 간절한 호소문으로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 때로는 경멸스럽고 사악한, 때로는 착하고 너그럽고 좋은 모습으로 나 자신을 당신 앞에 드러냈고 당신께서 보신 그대로입니다, 나의 영원한 아버지시여! 내 주위로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모아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이 내 고백을 들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내 말을 들으면서 그들이 내 결함에 신음하고 내 부족함에 같이 수치스러워하면서 그들 각자도 각자대로 당신의 옥좌 앞에 엎드려 각자의 속 마음을 드러내고, 그 누가 감히 당신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낫고 훌륭하다’ 아뢰올 수 있는지 살펴봐 주십시오.”

장 자크 루소는 18세기의 위대한 교육자로 그 시대 다른 누구보다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인간성을 개선하는 그의 특이한 방법은 보편적으로 좋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19세기 교육자들은 그 누구도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려 하지 않았고 종교인들이 그렇듯이 장 자크 루소도 우리 모두의 창조주께 그의 피조물인 우리들의 모자라고 불미스러운 점을 보여드리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유감 천만스럽게도 20세기에 와서도 우리가 따르고 피해야 할 안내 지표를 찾기가 힘들다. 미국의 학문과 문학도 고등 교육에 관한 그 어떤 실용성 있는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학생은 장 자크 너머 벤자민 프랭클린에게서 자아 완성을 위한 인간수업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 사어(死語)가 된 언어는 예외로 하고, 그 아무도 교육의 어떤 부분이 개개인 학생의 삶에 유용한지 안 한지 토의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문제를 나는 다뤄보려고 한다.

교육자로서 장 자크는 어떤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제 일인자이다. 그는 ‘에고’를 경계하라는 하나의 경고성 기념비를 세운 사람이다. 그의 시대 이후로 그의 영향 때문에 ‘에고’는 점차로 스스로 소멸되어 ‘마네킨’이 되었다. 이 마네킨에 이 옷 아니면 저 옷 여러 가지 교육이란 장식품 의상을 입혀 인형 같은 마네킹에 잘 어울리는지 아닌지. 학업의 목적이 학생의 인격과 인성 위주의 인물이 아닌 그가 걸치는 의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재단사는 그의 고객의 요청에 따라 마테킨과 옷을 서로 맞춰가며 마름질 한다. 이 책(자서전)에서는 재단사의 목적이 대학에서든 아니면 다른 학업장에서든 젊은이들이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비상 사태에도 잘 대응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란 옷을 맞춰 주는 것인 동시에 그들 부모에게 씌워졌었던 짜깁기 옷들의 결함 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자적인 정신력을 가진 젊은이라면 그의 스승에게서는 고작해서 학구적인 도구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 일 뿐, 교육의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이 우주 에너지의 한 형태로서 그가 추구하는 학업의 목적은 그가 타고난 모든 자질과 능력을 유효적절하게 사용하고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며 자신의 노력을 원하는 방향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이 모든 방편 도구들과 모델들은 버려도 된다. 그러니 마네킨은 3차 또는 4차 방정식 같은 가하학적 학구작업상의 가치가 있기에 인간조건의 작동과 비율을 측정하는 유일한 기준치이라서 없어서도 안 되겠지만 동시에 현실감과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마치 그대로의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실제로 그럴 수도 있으리라!”

흥미롭게도 지난해 11월 출간된 그의 전기(傳記) ‘미국의 마지막 귀족: 빛나게 뛰어난 생애와 헨리 아담스가 받은 별난 교육(THE LAST AMERICAN ARISTOCRAT: The Brilliant Life and Improbable Education of Henry Adams)’ By David S. Brown에서 이 전기 작가 데이빗 브라운은 아담스는 평생토록 굉장한 ‘우월감’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담스와 교분이 많았던 여러 사람들의 견해를 종합해 다음과 같이 영국의 정치인 존 몰리(John Morley (1838-1923)의 말을 인용한다.

“만일 A(dams)가 벌거벗은 제 몸을 거울에 비춰본 적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는 다른 사람들을 좀 더 좋게 평했을 것이다. (If A. had ever looked at himself naked in a glass he would have rated other men a little more gently.)”

그러면서 전기작가는 헨리 아담스의 삶을 결론적으로 이렇게평하고 있다. “헨리가 특출나게 뛰어났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미학적(美學的) 취향은 아주 높았고, 심통이 나지 않을 때에는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했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의 신랄한 비판은 그가 평생토록 극복하지 못한 그의 미숙한 불안감을 노출시킨 것이었다. (That Henry was brilliant is beyond question. His aesthetic taste was very fine, and he wrote beautifully when he wasn’t consumed by bile. But his caustic critiques of others revealed an insecurity he never outgrew.)”

내가 추측컨대, 그의 여러 가지 천부의 자질과 귀족적인 가문의 특혜 때문이었을런지는 몰라도, 이 ‘황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담스는 ‘명문가’와 우수한 ‘재능’이라는 핸디캡으로 ‘불우(不遇)’(?)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저도 모르게 ‘우월감(優越感)’이라는 superiority complex 환자가 되지 않았었을까.

우리 생각 좀 해보면 ‘우월감’도 일종의 ‘열등감’으로 ‘불안감’만 키워주는 악성(惡性) 만성피로증후군(慢性疲勞症候群)의 고질병 (痼疾病)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 치졸무쌍(稚拙無雙)한 유아병(幼兒病)인 열등감과 우월감을 극복할 수 있는 천연적인 근치약(根治藥)은 무엇일까.

이는 마땅히 다름 아닌 우리 모두 하나 같이 예외 없이 코스미안으로 태어난 우리의 진정한 우주적 정체성과 본질을 깨달을 때 비로써 느끼게 되는 각자 자신의 ‘자족감(自足感) Sense of Self-Sufficiency’을 키우는 일이어라.

서울대학교 미주동창회

서울대학교 미주동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