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지구환경과학 10)
사실은 서울대 생각을 꽤 자주 한다.
정확히는 서울대를 가서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장사꾼 사이에서 자랐다. 부모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을 못 했으니 제도권 교육을 받은 바가 거의 없고 대신 거리에서 배웠다.
아빠는 인쇄소를 했다. 세 사람만 들어가도 꽉 차는 작은 가게 벽면 한쪽에는 금속 활자가 가득했다. 그중에 맞는 활자를 하나씩 꺼내서 명함이나 고무인을 만드셨다. 활자를 골라서 탁탁, 글자사이 여백도 금속 조각을 넣어 탁탁. 조판을 만들어 끼운 다음 잉크를 묻혀 명함을 찍어내거나 열과 압력으로 고무를 눌러 활자를 찍어냈다.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 그리고 고무가 익는 냄새를 여전히 기억한다.
왜 하필 밥벌이로 인쇄를 택했을까?
아빠는 자신이 무학임을 한 번도 숨기지 않았고 누구보다 한자를 많이 안다는 걸 평생의 자부심으로 삼았다. ‘서울대 교수와 한문 대결을 했는데 내가 이겼다니까’하는 일화를 자주 꺼내기도 했다.
내가 서울대에 입학하던 해 아빠는 검은 머리가 다시 났다. 어느 날 저녁에는 소주를 마시다가 이렇게 말했다. “민아야 이제 너는 상류층이 된 거야.”
실상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나는 좀 방황했다. 양쪽 세계의 경계에 서서 혼자서 열불이 나던 때가 잦았다. 못 배운 사람이 배운 사람에게 갖는 동경을 보고 들으며 자랐는데, 막상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야트막하고 고루했다.
내가 공부를 생각보다 ‘너무’ 오래 하고 돈 되는 직업을 가질 생각도 없어 보이자 부모는 기대를 거두었다. 일찌감치 부모의 기대를 꺾어서 기쁘다.
서울대에 와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훌륭한 친구를 얻었고 무엇보다 학벌이라는 큰 자원을 갖게 됐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학교를 떠날 즈음에는 이곳의 공기가 너무도 견디기 힘들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내게 뿌리 깊게 새겨진 어떤 마음들 때문이다.
‘제일’, ‘가장’, ‘최고’와 같은 부사에 쉽게 현혹되는 마음. 소속과 직함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 완벽하게 성공할 수 없다면 시도조차 하고 싶지않은 마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긍심을 얻는 마음. 초라한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음.
잃게 된 것은 그러니까 상상력이다.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그리는 상상력. 뿌리 깊게 새겨진 이러한 마음에서 벗어나는 일이 평생의 숙제가 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서, 또 나에게서 진실을 찾는 일을 방해할 것이다.
작년에 글을 쓰며 살기로 하면서 내 것이 아니었던 여러 욕망을 포기했다. 될 수 있으리라고, 혹은 성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여러 후보를 인생에서 지우고 나니 무척이나 마음이 편해졌다. 어려서 장사꾼들의 삶을 곁눈질하며 보지 못했다면 결심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장사꾼과 엘리트 사이에서 겪었던 혼란이 나의 가장 큰 자원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책 ‘돈 후앙의 가르침’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글을 맺고 싶다.
“모든 길은 똑같다네. 어디로도 통해 있지 않지. 덤불을 헤치고 나아가는 길이든, 덤불로 들어가는 길이든 그게 그거야. …이 길에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가? 그렇다면 그건 좋은 길이지. 그렇지 않다면 아무 쓸모도 없는 길이고. 두 길이 모두 어디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중 하나에는 마음이 깃들어 있고, 다른 하나에는 깃들어 있지 않네. 한쪽 길은 즐거운 여정을 제공하네. 자네가 그걸 따라가고, 그것과 하나가 된 동안은 말이야. 다른 쪽 길은 자신의 삶을 저주하면서 가는 길이지. 한쪽은 자네를 강해지게 하고, 다른 쪽 길은 자네를 약하게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