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은(음대 07)
2020 시월, 코로나 19가 시작된 지 7개월이 지난 지금 – 내 핸드폰 캘린더에는 “피아졸라의 사계 협연” 스케줄이 적혀있지만, 지금 나는 어디인가? 포도 밭에서 흐르는 땀을 닦고 있는 농부를 위해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있다. 그가 미소 짓는다. 참 평화롭고 행복하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연주생활을 하던 나는, 코로나로 인해 내년 3월까지 모든 연주 일정이 취소되었다. 내가 매니징 감독과 수석연주자를 맡고 있는 “델리리움 무지쿰 챔버 오케스트라(Delirium Musicum Chamber Orchestra)”가 막 Walt Disney Concert Hall에서의 데뷔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단원들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4월부터 이웃들을 위한 마당 콘서트(Courtyard Concert)를 열기 시작했다. 이웃들은 아파트 발코니에서 공연을 관람했고, 환호했다. 이 공연은 6월까지 12번 진행되었다. 이웃들은 손 편지, 음식, 와인 등을 가져다 주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음악이 이 시기에 얼마나 큰 힘을 줄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직접 청중들을 찾아가 보자. 바이올린을 들고 농장과 Winery를 돌아다니며 연주하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하여 캠핑카로 여행하고, 좋은 먹거리를 우리 식탁에 전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다큐멘터리로 만들자!” 이 무모한 도전에 동참하게 된 동지는 델리리움 무지쿰의 음악감독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에티엔 가라(Etienne Gara). 우리는 1971년산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구입하였고, 몇달 간 고치고 개조하고,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페인트 칠을 하였다. 이로써 “무지카라반 (MusiKaravan)”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된다. 몇 달 간에 걸친 준비 기간 동안 우리는 철저한 계획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캘리포니아의 농장과 Winery 100여 군데에 연락하여 우리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날짜를 상의하였다. “우리는 3000석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던 음악가인데 당신의 포도밭에 가서 일꾼들이 포도 따고 있으면 그 옆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할 게요.” 언뜻 들으면 황당할 수 있는 제안이기에 우리의 미션을 잘 전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방문 일정이 하나하나 채워지기 시작했다. 허나 웬걸, 일정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50년 된 차는 가끔씩 멈추기도 하였고, 농장의 염소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우리를 맞이할 수 없게 되기도 하였다. 때로는 좋은 인연들을 만나 한 곳에서의 체재 기간이 길어지기도 하였다. 무지카라반과 길을 떠난 지 오늘로서 40여일, 계획 없이 흐르는 대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아보카도 농장, 토마토 농장, 올리브 오일 농장, 와인 농장, 심지어는 타조농장에서도 공연 하였지만 이 중에 계획된 것은 10%도 되지 않는다.
주로 관객은 1명에서 많으면 10명이었다. 포도, 토마토, 딸기 등을 따고 있는 농부들 옆에 다가가 흙을 밟으며 브람스, 쇼팽, 혹은 찰리 채플린의 “스마일”을 연주한다. 사람들은 우리의 작은 공연이 그들에게 일어난 마법 같다고 이야기 한다. 음악이 역병으로 인해 움츠러져 있던 마음을 풀어주고, 보이지 않는 선으로 사람들을 이어준다. 우리도 그들의 삶을 보며 배우는 게 많고 또한 따뜻한 인심에 감동받는다. 공연 뿐만 아니라 이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 미니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다. 현재 짧은 영상과 사진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작은 컴퓨터로 길에서의 편집이 쉽지는 않지만 곧 유튜브로 에피소드가 올라갈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 많은 노력, 시간, 용기, 배짱 그리고 비용이 들었다. 현재도 매일 매일이 새로운 도전이다. 우리의 프로젝트가 당신의 마음을 울린다면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 아직은 지출이 크기에 후원금을 받는 외에도 페트리온(Patreon, 후원자와 창작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시작할 계획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가 전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내년에는 한국여행 연주를 계획하고 있다. 음악이 모든 장벽을 부시어 주는 초월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고 귀여운 빨간 버스가 아름다운 한국 시골 곳곳을 다니며 허수아비를 악보대 삼아 연주할 “아리랑”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 했던가? 지금 우리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