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강수상 (의대 47) 동문 별세

강수상 선배님을 추모하며, 노영일  (의대 62)

강수상 동문(의대 47) 이  2025년 7월 10일 목요일 오랜 지병으로 별세 하셨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루었다.  추모 행사를 2025년 9월 20일  시카고 한인 문화원 비스코 홀에서 추도식과 함께 Lecture Series 를 기획하고 있다. 화환이나 부조는 사양하고 대신 시카고 한인 문화회관 발전기금으로 기부해 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강수상  (47 시카고) 선배님을 처음 만나 뵈온것은 지금으로 부터 45년전 제가 시카고에 직장을 잡아 정착한 때였습니다. 선배님은 매우 엄격하시면서도 동창회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후배들을 아껴 주셨습니다. 동창회가 흩으러 지지 않도록 규율을 잡아 주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제나 지금이나 선배님은 가히 시카고 동창회의 대부 (代父)라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동문들의 고령화와 젊은 동문들의 유입이 줄어들자 걱정하시며 동창회의 앞날에 대해 안타까 와 하시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동창회 모임이 뜸해지자 다시 부흥할 수 있도록 백의 종군하시는 노력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선배님은 일 찌기 모교 교직에 계실 때인 1950년대에 미네소타 대학에 교환교수로 오셔서 핵의학을 연구하시고 귀국하여 모교에 방사선 동위원소실을 창립하셨습니다. 그후 1964년 IAEA장학생으로 시카고 대학에서 생화학과 유전학을 연구하셨고 세균을 통한 생명현상을 연구하셨습니다. 그후 1973년 뜻하신 바가 있어 귀국을 포기하고 이곳 시카고 러시 대학에서 교수로,  Director Of Biochemical Genetics로 계시면서 많은 연구 업적과 후배양성에 전념하신 과학자이고 교육자 이셨습니다. 1983년에는 임상유전학 전문의 제도 창립에 참여하시고 American Board of Medical Genetics의 창립멤버가 되셨습니다. 특히 호모시스테인 연구에 몰두하셨을 때에는 선배님의 논문이 많은 학술 논문에 인용 되었으며 세계 각국에서 초빙강사로  초대받아 강의도 하셨숩니다. 새까만 후배인 저에게도 가끔 전화하시고 제가 전문하던 신경내과 질환과의 임상적 연관성에 관해서도 토론하시곤 하였습니다.

1966년 서울의대 시카고 동창회를 창립하셨습니다.  1980 년 부터는 매년 하기 캠프를 주관하시고 1983년 부터는 연례 학술대회도 가졌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시계탑에 투고를 하였을 때는 친히 전화를 걸어 주시고 격려하여 주시며 계속 글을 올리라고 하셨고 그것이 동창회를 위하는 일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선배님도 전에는 많은 투고를 하셨는데 이제는 연세때문에 글을 자주 쓸 수 없다며 후배들이 많은 투고를 하여야 된다고 하시어 동창회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마음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1990년 서울의대 미주 동창회장을 역임하시며 China Medical Board Fund에서 150만불의 지원을 받아내어 모교에 기증하셨습니다. 1997년부터 장학사업을 시작하시어 많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후 아끼던 아드님을 불의의 사고로 잃으시고 애타는 마음을 승화시켜 아드님을 기리는 장학재단을 창립하시어 후배들 양성에도 전념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또 최근에는 사모님이 이사장으로 계시는 시카고 한인 문화원을 통해 한인사회에 대한 봉사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1993 – 1995 년에는 제 2대 서울대학교 미주 총동창회장을 역임 하시며 모교의 발전에 헌신 하셨습니다.

많은 표창과 칭송을 받으며 지성적이고 활발하시던 선배님이 최근 몇년간은 말씀도 적어 지시고 두 세번 만나 뵈었을 때는 차츰 망각의 세계로 들어 가시는 것을 볼수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이제는 다시 뵈올수는 없겠지만 저승에서도 동창회와 후배들을 사랑하시는 모습이 눈앞에 선히 보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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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미주동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