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요리와 수술 – 조중행 (의대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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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February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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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요리와 수술 – 조중행 (의대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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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요리와 수술 – 조중행 (의대 63)

나에게는 미식가이고 요리를 좋아하는 아들과 며느리가 있다.

“엘 불리(El Bulli)”의 음식, 페란 아드리아( F e r r a n Adria)* 요리의 예술성, 철학까지 논하고, 자신들도 가끔 요리 레슨도 같이 받고, 두 사람 자기들 저녁 한끼라도 모든 정성을 다해서 요리하는 아이들이다. 요리를 통해서 만났고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집에는 전공 서적과 나란히 “El Bulli’s Philosopher”(엘 불리의 철학자)나 세계적 식당 Alinea(알리니아)의 요리사 Grant Achatz(그랜트 아캇즈)의 요리에 관한 책들이 꽂혀있다.

얼마전엔 일요일 아침 10시 반쯤 전화하고 “야 너희들 뭐 하니?” 물었더니, 며느리가 “저녁 준비하고 있어요.”라고 한다. 따로 누구를 초대한 것도 아니고 둘이 먹을 저녁 준비를 일요일 아침 10시부터 하고 있는 이 두 사람을 나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작년 극동 순방 중 동경의 미셸린 별 세개짜리 식당 “스키야바시 지로 스시”* 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그 유명한 초밥을 반이나 남긴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안타까와 한다. 이해하기 힘들긴 하지만 두 아이들 덕분에 지난 몇 해 우리 부부도 가끔 이런 미셸린 스타 레스토랑에 묻어서 갈 기회도 있었고 여행을 가면 가끔 이 아이들이 추천하는 식당에 가보는 호사를 한다. 최근 시카고의 미식가들 사이에 꼭 가보아야 할 식당으로 꼽히고 있는 식당 “Ruxbin”(럭스빈)에 같이 갈 기회가 있었다. 교포 2세 청년이 몇 년전 시작, 규모도 크지 않고, 예약도 받지 않고 하루에 꼭 두 번 저녁 5시 반과 7시 반에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만 받는다.(작년부터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두들 곧 미셸린 스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고 잡지같은 데에선 셰프 에드 김(Edward Kim)은 항상 시카고의 차세대 요리사로 꼽히곤 한다. 시카고 시장 론 임마뉴엘도 다른이들과 다 똑같이 길에서 줄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가 먹고 나오곤 했다. 드디어 금년에 미셀린 스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3년 전 어느 토요일 우리식구도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5시 반이 되니 우리 앞에서 딱 첫 번째 그룹(Seating)이 끝나 버렸다. 직원이 우리에게 다른데 가서 기다리다가 일곱시 반에 다시 오든지 이 층 부엌 앞에 라운지가 있으니 거기에서 앉아서 기다리라고 한다. 우리는 그 부엌 쪽 라운지 앞에서 두 시간 기다리기로 하고 이층으로 올라가 앉았다.
큰 통 유리문을 통해서 부엌과 요리사들이 일하는 것이 보였다. 조그만 체구의 30대 초반의 동양인 청년이 접시의 요리 위에 예쁘게 생긴 꽃잎을 외과 수술용 핀셋(?)으로 정성을 다해 장식하고 있었다. 그 밑의 한 7-8명 되는 다른 요리사들이 그의 지휘 하에 일사불란하게 각종 요리를 준비하는 것이 훤히 드려다 보였다. 재료를 준비하는 사람, 끓이고 볶고, 접시에 요리를 옮기고, 모두들 말도 거의 하지 않으며 웃지도 않고 모두들 심각한 표정으로 일하고 있었다.

일생을 심장외과 분야에서, 수술장에서 일해온 나에게 이날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우리 직업상 수술장에서는 언제나 긴장과 정신 집중이 늘 요구되고 간혹 집도의가 팀의 책임자로써 신경질도 낼 수 있다. 그날 본 그 식당의 풍경은 대수술을 하고 있는 수술장 풍경보다 더 심각했으며 일사분란한 팀웍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사불란해 보였던 팀웍,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던 일에 대한 몰입과 헌신, 셰프가 주위의 보조인들에 풍기던 리더의 모습 등은 이들 요리사란 직업에 대한 나의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계기였다.내어오는 음식은 맛은 물론, 아름다운 회화적 음식의 색깔과 배열, 종합 예술적 성과라 할만큼 내 마음속의 카메라에 남아있다. 그날 음식을 먹으며 생각했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물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직업의 종사자들이 쏟았을 노력과 헌신에 대해 생각했다.

얼마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외과의사가 마취과 의사와 기도 확보에 대한 의견이 달라서 신경질을 내며 이미 마취에 들어간 어린 환자를 깨우라 하고는 수련의에게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책임을 떠 맡기고 수술장에서 나가 버렸다는 신문 기사가 있었다. 또 한 외과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장 안에서 생일 케이크를 먹고 떠들었다는 기사도 보았다. 수술장에서 집도의가 자신의 성깔을 못 이기고 조수와 간호사를 구타하고 인격 모독적 발언을 일삼았다는 기사도 보았다.
늙어가는 이 외과의사에게, 이 모든 이야기가 과장되고 왜곡된 소문이기를 바랄 뿐이다. 정말이라면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의사들에게 일류 식당에서 일류 요리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한번 견학하라고 꼭 권하고 싶다. 신경외과 의사가 되려다가 미국의 일류 의과대학 졸업을 일년 잎두고, 뉴욕 최고의 불란서 식당 대니엘에서 요리사 수련을 받고, 현재 뉴욕의 유명한 한국 식당 단지(미셸린 스타)를 운영중인 요리사 김훈의 이야기를 새겨서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올바른 길에는 지름길이 없다. 오래 걸리고, 그 길은 언제나 더 힘들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된다. 그러나 마지막 만들
어지는 그 음식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곧 알아본다.” (the Birth of Korean Cool: Euny Hong) 외과의사인 아들에게도,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아침부터 준비하던 그 마음과 자세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엘 불리; 스페인 카탈로니아 의 세계 최고로 인정받은 식당.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는 세계 최고의 쎄프로서 존경 받고 최근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주아리가 “El Bulli 의 철학자”란 요리사 Ferran Adria 요리의 미학, 예술성, 철학에 대한
책을 발간했다.
*알리니아(Alinea); 시카고의 미셀린 3 스타 식당; 세계 4-6위의 식당으로 알려짐.
조중행 <심장외과의, 분당 서울대병원 국제진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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