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여 노벨상에 도전하라 _ 김선영 (문리대 78)

한국에서 여성이 노벨상을 받는다면, 이공계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월등히 많은 숫자의 여학생이 입학하는 생명과학 전공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블랙번과 캐롤 그라이더의 연구 역정은 우리나라 여성과학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0년대까지 생명과학계의 주요 궁금증 중 하나는 ‘텔로미어’라고 불리는 염색체 DNA의 최종 말단부위가 어떤 모습을 갖고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다.

염색체 DNA는 2개 가닥의 나선 형태이기 때문에 운동화의 끈과 비교하자면, 그 끝부분이 잘 마무리되어 있어야 끈이 풀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DNA도 최종 말단부위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블랙번은 27세인 1975년, 예일대 교수가 된 남편을 따라 같은 대학 조셉 갈 교수의 실험실에서 박사후과정(포스트닥)을 시작했다. 다양한 생물체에서 DNA의 구조를 연구하던 갈 교수는 남성이지만 여성의 과학 활동을 장려하여 걸출한 여성과학도를 많이 배출한 특별한 사람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던 프레드릭 생어의 제자다. 생어의 지도로 박사 과정 중 배운 시퀀싱 기술로 무장한 블랙번은 ‘테트라하이메나’라는 원생동물을 사용하여 1년도 안 돼 텔로미어에 있는 유전정보가 무엇인지를 밝혔다. 1978년 다시 남편을 따라 서부로 간 블랙번은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의 교수가 되어 공동연구를 통해 원생동물의 텔로미어가 효모에서도 작동함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결과를 얻었다. 짚신벌레와 같은 원생동물의 텔로미어가 균(菌)에 속하는 효모에서 작동한다는 것은 텔로미어가 모든 생명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DNA 말단의 기본 모습을 알아냈으니 결정적인 ‘한방’이 필요했다.

그라이더는 학교 성적은 좋았으나 난독증(難讀症)에 시달렸다. 우리나라의 수능쯤에 해당하는 SAT(대학 입학)과 GRE(대학원 입학) 성적은 매우 낮았다. 많은 대학에서 입학을 거절당했으나 캘리포니아 대학(버클리)과 칼텍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버클리를 선택했다. 1984년 블랙번의 연구실에 그라이더가 대학원생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4년에 걸쳐 텔로미어에 붙어있는 단백질과 RNA의 존재를 밝히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큰 그림이 밝혀진 1988년, 블랙번은 40세, 그라이더는 27세였다. 수년 후 텔로미어는 암과 노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밝혀졌다.

블랙번과 그라이더는 30세 전후에 결혼하여 실험에 몰두하면서도 자식을 낳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렸다. 수상 후 블랙번은 여성 과학도들에게 과학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두 여성의 노벨상 수상에는 당대의 중요한 생물학적 이슈에 대해 뛰어난 테크닉을 가지고 끈기와 열정으로 실험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에는 운명적 조력자들이 있었으니 여성과학자를 열성적으로 격려하고 원생동물에서 텔로미어 연구를 시작하게 해준 블랙번의 은사 갈 교수, 대학원생이던 그라이더의 실험결과를 그녀의 업적으로 인정해준 지도교수 블랙번 자신, 그리고 두 여성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남편들이다.

지난 23년간 서울대에서 많은 여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높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실험과학자로 성공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상당수는 스스로 평범한 여자의 길을 택했고, 또 다른 이들은 출산과 육아, 남편 우선의 사회문화로 인한 과다한 가사노동 때문에 경쟁력을 잃었다. 블랙번과 그라이더는 노벨상에 도전하는 여성과학도가 연구와 결혼 시 선택하고 고려야할 중요한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중앙일보>

Leave a Reply

서울대학교 미주동창회

서울대학교 미주동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