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껏’사는 사회 · ‘원칙’만큼은 지키는 사회 _ 이상봉 (문리대 65)

한국어에 “은근 슬쩍, 요령껏, 적당히” 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말은, 한국 사회상(社會相)를 아주 적나라(赤裸裸)하게 표현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언어가 바로 사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근 슬쩍, 요령껏, 적당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자연히 ‘은근슬쩍, 요령껏, 적당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잘살게 되어 있고, 그런 류(類)의 사람들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게 되다보니… 그런 사람들이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요 또한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은근 슬쩍, 요령껏, 적당히” 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원리 원칙이라는 것을, 적당히 요령껏 은근슬쩍 무시하고 속이면서, 돈벌고 출세를 하여… 자기만 잘먹고 잘살아야 된다!’ 라는 의미다. 그렇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원리 원칙이라는 것이 사회의 기초로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는 ‘원칙을, 적당히 요령껏 은근슬쩍 무시하고 속이면서, 돈벌고 출세를 하여… 자기만 잘먹고 잘살아야 된다!’ 라는 생각이나 행위는 용납될 수가 없기에… 애시당초에 그런 말은 생겨날 수 조차도 없는 것이다.

이야기 하나: 미국의 수퍼 마켙에 가보면, 한쪽 코너에 ‘술 판매’ 하는 곳이 있는 주(州)가 있다. 일요일에는 술을 오전中에는 팔지 못하게 되어 있는 州에서 보게되는 장면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수퍼 마켙에 둘렀던 사람이 술을 사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때의 시각이 오전 11시 55분이나 11시 58분이었다고 해도, 술 판매 코너에서는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 엄연히 종업원이 있는 데도 술을 판매하지 않는다. 술 판매 코너 앞에서 고객이 기웃거리면, 종업원이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가리키면서, ‘아직 12시가 되지 않았으니까… 기다리라!’고 하고 있다가, 정확하게, 시계가 12시를 넘어가야만 술을 팔기 시작한다. 어떤 때에는 – 특히 명절 때에는 – 술을 사러 온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서 줄을 길다랗게 서서 기다리고 있어도, 정해진 시간 前에 술을 파는 例가 없다.

결론을 말하면 “그까짓 것… 겨우 2~3 분 정도인데, 뭘 그걸 가지고 그래! 적당히 알아서 하면 될 것을, 저렇게 꽉 막혀 가지고서는… 저 병신 언제 돈을 버나? 쯧 쯧” 라는, 한국式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둘: 이번에는 장난 같은 이야기를 한가지 해볼까? 미국의 고등학교 이야기를 해보아야 되겠다! 미성년자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미성년자에게는 담배를 팔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기도 하지만… 어차피, 고등학생 중에는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미국의 고등학생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우습다. 숨어서 몰래 담배를 피워야 할텐데… 그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다 볼 수 있는 길거리로 나와서 – 그야말로 대로상(大路上)으로 나와서 – 담배를 피우고들 있다! 다시 말하면… 학교內에 숨어서 선생님 모르게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경계선 밖으로 나와, 대로상(上)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학교 내(內)에서는 금연(禁煙)’으로 되어 있기에, 학교 구역 內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학교 內에서의 금연이라는 말은, 학교의 건물 內에서만이 아니라… 학교 운동장에서도, 학교 잔디밭에서도, 학교 나무 그늘 밑에서도 금연(禁煙)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곳이 학교 구역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 미국의 학교에는 담장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학교와 외부와의 경계는 결국 도로가 되는 것이고, 학교 구역을 벗어나서 담배를 피우려고 하다보니, 결국은 대로상(上)에서 담배를 피우게 되는 것이고… 그리하여, 지나가는 모든 행인의 눈에 띄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을 선생님들이 보아도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곳은 엄연히 학교구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학생을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은 -미성년자의 흡연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은 – 법집행관에게 있지만… 그러한 사소한 것 까지 모두 다 법집행을 할만한 인력이 모자라다 보니, 결국은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코메디 같아 보이기도 하고, 속 들여다 보이는 짓 같기도 하지만… 그들의 행위 속에는, 한국式으로 “은근 슬쩍, 요령껏, 적당히” 숨어서 –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고서 – 몰래 담배를 피우는 그런 거짓과 요령; 즉 겉으로만 들키지 않도록 교내의 구석진 곳이나 변소 같은 곳에 숨어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그런 얕은 속임수는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차피 그 끊을 수 없는 담배를 피우기는 하지만 ‘교내 흡연 금지’라는 그 원칙 만큼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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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미주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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