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북전쟁 ‘Metaphysical Club’ 을 읽고 _ 민상기 (의대 60 졸업)

미국과 한국은 공히 동족상잔의 남북전쟁을 겪었으나 그 결과는 너무나 판이하다. 왜?
미국과 한국은 90년 사이에 남과 북이 서로 잔인하게 죽이고 죽어간 전쟁의 비극을 겪은 나라들이다. 그래서 미국은 4년(1861~1865)만에 전쟁을 끝내고 5년만인 1870년 다시 한 나라가 되었다.
1865년 4월 8일 남쪽 Robert Lee장군이 북쪽의 Grant 장군을 만나 항복할 당시 Grant 장군은 남쪽 군사들의 배고푼 사정을 알고 식량을 공급했고 북쪽 군사들에게는 “이제 전쟁은 끝났다”며 승리를 축하하는 불꽃놀이들을 금지시켰다고 전해졌다. 서로 이해하는 마음씨를 느끼게 한다.
한국의 경우는 너무도 달랐다. 1952년 정전을 위한 협의를 시작하면서도 거의 1년 동안 서로 싸웠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협정 당시 UN군 사령관이었던 Mark Clark장군은 그의 저서 ‘From the Danube to the Yalu’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휴전 협정 서명이 지연되던 10일 동안 남쪽에서 1만 4천명의 한국군이 죽거나 행방불명되고 부상을 입었다. 이미 서명을 할 것인데 더 싸워 우리 젊은이들의 피를 그리도 더 많이 흘리게 했다니 우리 젊은이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했던 당국이 원망스럽다’
Clark장군은 계속해서 ‘이승만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정전협정을 방해하며 일방적으로 전쟁을 계속하겠다며 위협해 미국 정부와 UN군의 계획을 지연시켰음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라고 적었다. 겉으로 보이는 역사적 여건으로 본다면 5천년 역사의 단일민족을 내세우는 한반도가 벌써 통일을 했고 100년도 안 된 여러 이민자들의 신흥국가 미국이 통일하기 어려웠을 것이나 실은 반대였다. 과연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고심하던 중 ‘The Metaphysical Club’을 읽고 그 답을 소개하고자 한다.
‘The Metaphysical Club’
2001년도에 출판된 Louis Menand에 의해 쓰여진 500페이지가 넘는 미국 남북 전쟁시대를 거친 여러 사상가들(Oliver Wendell Holmes, William James, Charles Peirce and James Dewey 등)의 전기를 방불케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독일도 아닌 신흥국 미국의 사상가들이었으며 불가지론(Agnostiaism) 이라는 신조어에 더 끌려 있었던 시대인지라 ‘The Metaphysical Club’이란 이름을 빈정대거나 반항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지적도 이해가 된다.
1872년 Mass.주 Old Cambridge의 젊은 지성인들이 거의 주기적으로 만나 토의를 했으며 주로 Charles Peirce나 William James의 서재에서 모였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미국이 민주사회를 내세우면서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의견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전쟁을 했다는 사실에 뼈아픈 자성이 있었을 것이며 알 듯 모를 듯 한 metaphysics보다는 실리적 결과를 중시하는 행동철학으로서의 pragmatism이 싹트게 됐다고 본다.
Idea
Holmes, James, Peirce, Dewey 등의 사상 바탕은 관용(tolerance)라는 idea에 있었음이 지적됐다. 관용이란 미국 이민역사의 정신이기도 하다. 영국 등 유럽의 종교적 독재성을 피해 종교적 관용성을 찾아 미국에 오게 된 것이다.
남북전쟁도 관용성이 발휘됐다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와 우리만 옳기에 모든 기회를 독점하겠다는 생각에 관용이나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서로 평화적이고 좋은 결과에 관심이 있는 pragmatism이라면 관용의 바탕이 필수조건이다.
‘Pragmatism’이란 원래 과학자 출신인 Peirce의 ‘How to make our idea clear?’라는 essay에서 소개된 단어를 James가 발전시켜 미국 철학으로 등장시켰다. James는 1842년 뉴욕 출신이고 1870년 Harvard, M.D를 거쳐 철학자가 되어 유럽사상(metaphysics)에 질린 철두철미 미국인으로 ‘결과’ ‘Cash Value’등에 관심을 나타냈다.
Dewey는 특히 미국 교육철학에 기여했으며 교실 책보다 직업교육을 중시한 학자로 널리 알려졌다. 지식이 행동의 도구로 기여한다는 Instrumentalism을 주장했다. Scholastic culture는 속물근성(snobbishness)을 낳지만 직업을 통한 fellowship은 democracy를 길러준다는 그의 가르침은 두고두고 우리를 깨우친다.
‘The Metaphysical Club’이 1872년에 시작할 무렵 Harvard대학도 신학 중심에서 과학 분야로 확대 발전케 됐다. 1869년 Harvard대 총장으로 온 Charles William Elliot은 화학자로서 MIT교수로 재직하다 왔으며 지대한 공로를 세웠고 한 때 James도 그의 제자였다.
19세기 미국 대학생이 9천명 이상 독일에서 공부했고 미국 Ph.D.학위 수여는 1861년부터 시작됐다는 기록이다. 미국이 남북전쟁 뒤 서부진출 사업, 대륙횡단 철도사업  등 산업국가 건설로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현대 미국을 건설한 힘은 pragmatism에서 나왔다고 믿게 된다.
Ideology
미국은 pragmatism이라는 idea로 통일된 나라를 이룩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면 한국은 idea가 없는 ideology때문에 계속 분열되고 싸우기만 한다. 백성과 나라를 위한 선의적 idea는 건설적 내용이 되지만 기득권 세력만을 위한 악의적 idea는 ideology로 퇴화해 파괴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내용은 18세기 프랑스 사상가들(philosophers)에 의해 왕권과 교권이 잘못된 믿음으로 백성들을 세뇌시켜 온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해 왔다. 요컨데 일반 백성들은 어리석고 도덕적으로 타락해 왕권과 교권이 다스려야 한다는 위선적 술수가 용납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한 마디로 ideology란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술수다.
남한은 ‘반공’을, 북한은 ‘반미’를 ideology로 내세워 싸우기를 60년 이상 계속하고 있다. 반공과 반미라는 ideology는 남과 북의 최고 가치관으로 둔갑해 한국인들을 옥죄고 있다. 서로 반대를 위한 주장이기에 이해와 관용이 들어설 틈이 없다. 한반도 5천년 역사에 반공이나 반미라는 역사는 없었다. 서울 광화문에 모셔진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 반공이나 반미를 상징하지는 않는다.
위선과 부패
되풀이되지만 ideology란 기득권 세력을 위한 위선이다. 그러기에 반공을 내세우는 남한이지만 전직 대통령이나 현직 국무총리 등 고위 공무원들이 병역의 의무를 완수하지 않은 솔선수범이 결여된 나라다.
앞서 지적한 전 UN군 사령관 Clark장군은 같은 저서에서 ‘한국전쟁에서 142명의 미군 장군 자식들이 근무했고 그중 35명이 희생(사망, 행방불명, 부상)됐다’고 미국의 솔선수범과 희생정신을 밝혔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Oliver Holmes는 1861년 19세 나이로 Harvard대학을 물러나 Union Army에 자진 참여했다. 32년 동안 대법원에 근무했고 1935년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옷장에는 두 벌의 군복이 있었다. 거기에 ‘이 군복은 내가 남북전쟁 때 입었던 것이고 옷에 묻은 것은 나의 피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Idea의 실천자는 솔직하고 용감하지만 위선적 혀로 애국을 말하지 않는다. 반공의 나라에서 병역을 필하지 않으면 북한을 돕는 이적행위로 처벌받아 마땅하나 고위직에 앉을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구차한 병명으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하나 현대전(총력전)에서 병역을 완수하지 못할 몸이라면 정부의 고위직 근무도 못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반공이 아니라 세련된(?) 표현으로 ‘종북세력’이라며 분열을 강조한다. 2차 세계대전 후 중국에서 국민군과 공산군이 싸울 때 막대한 미군 원조를 받은 장개석 군대가 망한 이유를 우리는 기억한다. 남 Vietnam도 마찬가지다. 위선과 부패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방위사업의 제반 비리는 대한민국의 방위 능력이 염려스럽고 정부 고위직 임명자들이 위장전입과 병역 미필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나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장관 자리를 유지하니 원칙과 법을 따른다는 주장이 헛소리로 들린다.
맺는 말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pragmatism의 힘으로 새로운 통일 미국을 재건하고 관용이 숨쉬는 민주사회와 문화국가로 발전했다.
다른 한 편 한국은 idea가 없는 ideology로 분열하고 투쟁하는 국가로 전락했다. 세종대왕을 광화문에 동상으로만 모시지 말고 한글 창조정신을 받아들여 남과 북이 함께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분열을 극복하고 평화롭게 살아보자.  Ideology를 탈피하고 idea를 공부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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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미주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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